동국대 총동창회
 
 
 
제23대 총동창회장 원용선(영문59) ㈜남양이앤씨 회장 인터뷰
  • 최고관리자 | 2022.07.01 11:29 | 조회 1218

    “나 이상 동국을 사랑하는 사람 없을 걸요” 

    총동창회장 시절 중단된 동국인 친선골프대회 부활,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학교와 공동주관

    서구적 면모에 세련된 모습, 그리고 준수한 얼굴이다. 부드러운 표정과 자상한 말씨 또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설득력이 있다. 제23대 총동창회장이자 ㈜남양이앤씨(E&C) 대표이사 회장 원용선 동문(영문59)의 인상이다. 그는 ‘동국대학교’ 하면 앞장서서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오는 ‘열혈 동국인’이다. 동창회 일은 물론, 모교 발전을 위한 애교심을 사심없이 발휘한다.  

    올해 나이 81세. 은퇴기인데도 여전히 회사를 이끌어가는 현역이다.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 ㈜남양이앤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차세대 5G 네트워크 구축-㈜남양이앤씨’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회사 연혁란에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머리말이 나온다. “걸음을 뽐내지 않고 묵묵히 천리를 가는 우직한 황소의 걸음처럼 한 길을 걸어온 ㈜남양이앤씨”라는 소개가 덧붙여졌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가는 원 회장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왕성한 현역으로 근무하신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데, 증여상의 문제도 있고, 내가 무엇보다 몸이 건강하고 일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데 뒤로 물러앉을 수가 없지요.”

    원 회장이 회사를 차린 것은 1968년 남양전기 설립으로부터 시작된다. 삼경물산 캐나다 토론토 지사에 근무한 뒤 귀국해서 1984년 남양전기를 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했다. 1996년 경기 구리시 교문동으로 사옥을 이전, 확장했다. 2005년 ㈜남양이앤씨로 사명을 
    바꾸고, 지난해 사옥을 크게 신축해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의 회사 발전은 눈부시다. 

    남양이앤씨의 전문 종목은 건물의 내선, 자동제어, 배전선로, 송전선로, 철도신호, 신재생에너지(태양광발전), 선로설비(광/동케이블, 관로공사), 인터넷 서비스망, 전송장비(전송, 교환, 무선설비), 소방시설 공사 등이다. 

    -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님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특별한 개인적 인연은 없습니다. 단지 모교 선후배라는 인연으로 뵙고, 상의하고, 동창회 일도 협조를 받다 보니 가깝게 되었지요. 그 분의 모교 사랑은 실로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 후배 사랑은 물론 모교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협조를 해주신 분입니다. KCC에 동국대 동문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도 모교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또한 정상영 명예회장님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희옥 총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정상영 회장님과 오찬을 하고 있는데, 마침 김희옥 총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정 회장님이 법과대학 직속 후배인데도 김총장을 잘 모르시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전화를 바꿔드렸지요. 한동안 통화를 하시는데 정 회장님이 불쑥 학교가 어려운 것을 아는데, 10억원을 보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김 총장이 감격해서 정창근 부총장을 인사차 보내 10억 쾌척을 학교 신문에 내겠다고 하니, 그러면 돈을 뺏어오겠다고 하셔서 소리없이 희사하신 일이 있습니다.”

    원 회장은 또 정상영 명예회장이 일산 캠퍼스 바이오관 건물 신축을 위해 130억여원을 내놓았다는 점도 소개했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선후배간의 끈끈한 우정을 말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였다.

    -대학 다니던 시절의 얘기를 해주시죠.

    “내가 다닌 영문과는 국내의 최고 석학들이 포진해 있었지요. 세익스피어 연구의 대가 김재남 교수를 비롯해 오석규, 이창배, 박진석 교수가 계셨습니다. 농대 학장님의 예쁜 딸과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첫사랑도 있었지요. 아름답고 꿈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총동창회장 시절의 일을 돌아볼까요?

    “나는 캐나다에서 근무할 때도 동국대 토론토 동창회를 만드는데
    앞장섰습니다. 총동창회장을 맡았을 때는 재정 안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회장 재임시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했는데, 기념행사를 모교와 공동주최했습니다. 수석부회장 시절(2003)에는 동국인 친선골프대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중단되었던 대회를 내가 총동창회장이 되면서 부활시켜 3회 대회를 열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회장 재임 시절 총동창회 잡음이 없고, 안정기로 접어들었던 것도 보람으로 느낀다. 그 이후 혼란기에 빠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동창회에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동창회는 일을 하려면 무한하게 많습니다. 또 안하려면 막상 할 일이 없습니다. 사무국이 동문 참여를 독려해야지요. 동문 배가운동, 동창회원 확장운동을 다각도로 펴야 합니다. 그리고 동창회발전기금 모금 조직을 만들어 재정 안정을 도모해야 합니다. 동국장학기금 모금도 그렇게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내년에 새 동창회장을 선출하는데, 지금부터 잘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 동창회의 불행한 일도 순리적으로 해결해야만 앞으로 크게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교에 바라신 점에 대해 한 말씀 주십시오.

    원 회장은 “우리 모교는 을사늑약의 분을 참지 못하셨던 불교 선각자들이 1906년 불교로 호국하시겠다는 일념으로 명진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홍월초 스님, 초대 교장에 이보담 스님이 취임하셨다. 그후 중앙불교전문학교와 혜화전문학교로 개명되었으며, 해방 직후 동국대학교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는 역사와 삼보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보물같은 대학이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모교 발전은 종단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종교사학 특유의 법인이사진 구성을 볼 때 모교의 구성원들이 자기 소신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율성을 보장하되 간섭은 말고, 종립학교 발전이 한국불교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속에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 KCC 정상영 명예회장님과 단국대학교 분당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단대 출신 ROTC 후배가 우리를 반기며 캠퍼스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는데 드넓은 수십만 평의 교지 위에 최신식 건물과 시설들이 들어선 것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원 회장은 모교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종단과 재단과 모교와 동문사회가 머리를 맞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단과 구성원간에 종속 관계가 되어선 안된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는 또 우수 교수진 확보와 시설 확충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선제적으로 장착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모교에서 대통령이 배출되지 않는 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이들 4자가 뜻을 합하면 된다는 뜻을 전했다.  

    “사회에 나와서 각 분야 리더로 활약하는 동문들이 많습니다. 모교의 학풍인 야성과 개척정신, 그리고 내 자신이 뛰어나지 않으면 거친 학연사회를 뚫지 못한다는 비장한 결의가 이런 결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동문들을 발굴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건강 비결은 등산이다. 자주 서울 주변 산을 오르는데, 1963년 당시 재경 9개 대학 ROTC 1기들과 등산하고, 골프모임도 갖고 있다. 부인 유언애씨(79세)와의 사이에 미국에 사는 딸 원향숙씨, 원윤희씨, ㈜남양이앤씨 상무이사로 근무하는 아들 원상희씨 등 2녀1남이 있다.    

    이계홍<국문65, 동창회보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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