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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선 양평군수(경행79) 동문 인터뷰
  • 최고관리자 | 2024.07.17 11:32 | 조회 18012
    전진선 양평군수(경행79) 동문 인터뷰

    “관광과 환경도시로 양평군을 새롭게 리세팅할 것”

    유서깊은 용문산의 사나사 성지화 작업
    재학시절 KUSA 활동으로 봉사와 배려의 정신 알아
    경찰 출신답지 않은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정치적 큰 자산



    한 시간 이상 서울의 복잡한 도로를 헤쳐나오다 양평의 두물머리에 이르자 비로소 마음이 탁 트인다. 산천경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인 두물머리 강물은 너무나 평화롭다. 수량이 풍부하고 물가까지 내려온 푸른 나무들이 가슴 시리게 한다. 이곳에서 사는 이들은 저절로 삶의 보상을 받을 것같다.

    -양평군수 전진선 동문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양평군은 서울 면적의 1.5배나 되는 넓은 땅이고, 인구는 13만명입니다. 전국 시군이 인구가 줄고 있지만 양평군은 지난해 4500명이 증가했습니다. 서울의 은퇴자 등 비교적 넉넉한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풍성한 산을 보고 찾은 것이죠. 군정을 맡은 사람으로서 관광과 환경도시로 양평군을 새롭게 리세팅할 것입니다.”

    -자료를 보니 두물머리와 용문산, 양강섬을 휴식과 힐링의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을 하셨더군요. 
    “그렇습니다. 양평은 종교 관광지로서 최적지입니다. 용문산의 사나사는 향토 절이긴 하지만 고려시대의 큰 스님인 보우선사가 중건한 유서깊은 사찰이고,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양근 성지, 기독교 성지가 있습니다. 이들 성지 주변을 잘 꾸미려고 합니다. 개발 이상의 관광 비전이 제시될 것입니다.”

    이중 사나사는 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에 속해있고, 용문산의 주봉인 백운봉의 기슭에 자리잡은 산세 수려한 절이다.  



    -양평군이 13만 인구라면 시로 승격할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 왜 시 승격 신청하지 않습니까?
    "양평군의 인구 증가와 함께 꾸준히 거론되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시 승격을 위한 고려를 논하기에 앞서 군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시 승격에 대한 논의는 우리 군과 군민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으로 현재 군민들 사이에는 승격의 장점을 들어 찬성한다는 주장과 단점을 들어 반대하는 주장 등 군민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존재합니다. 또한 인근 자자체의 사례를 살펴보면 시 승격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의 반대의견과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시 승격이라는 사안이 무조건적으로 좋고, 나쁘다를 쉽게 결정할 수 없듯 이를 반면교사 삼아 시 승격 과정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상수원 보호라는 이름 아래 농민들은 농작물에 농약을 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곡식 수확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당시 7만의 인구 중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했는데, 서울 시민 물 먹이느라 양평의 농업이 희생을 강요받은 것이다. 농민들의 원성이 높자 서울시가 물 부담금으로 연 140억원을 지원했는데 상수원 보호 인센티브 치고는 매우 빈약했다. 양평군 재정의 2%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파구로 관광문화도시로 전환하고, 미술관 박물관 등을 유치했다. 한강 수계의 모텔, 식당 등 수질오염원을 제거하기 위해 서울시와 함께 이들 건물들을 철거했다. 그러니 강변이 더 수려해졌다. 근래는 농토에 친환경 쌀과 채소, 수박 등을 심어 소비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전 군수는 그동안 도로의 병목 현상 때문에 서울 시민이 양평으로 들어오는 데 많은 불편을 겪었지만 금명간 서울-양평간 고속도로가 뚫리면 양평이 최적화된 관광도시·환경도시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또 △세미원 두물머리 국가 정원 추진 △양수리-거북섬 국가생태 탐방로 조성 △양근대교 왕복 4차선 확장 △용문-홍천 광역철도 추진 △지평-양동 전철 연장 등 지역 현안 사업을 속도감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이렇게 양평군의 미래를 행정가로서 포부를 밝히지만 그는 전직이 경찰 간부 출신이다. 모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석·박사과정도 마치고 경찰에 투신 후 경찰청 본청을 비롯 양평·여주·영동 경찰서장, 인천국제공항경찰대장, 인천지방청 경무과장 등 경찰 고위직을 고루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찰 출신 같지 않은 인상이다. 잘 생긴 동네 형 같은 따뜻한 품성과 부드러운 외양을 지녔다. 마음씨 좋은 행정가의 인상이다. 이런 모습이 정치적 큰 자산으로 보인다. 

    -일선 경찰서장 재임시절의 실적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농촌에서는 어르신들이 운전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면허에 대한 인식이 없고, 일이 급하면 우선 타게 되지요. 그렇다고 단속만 해서는 안됩니다. 농촌의 실정상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는 일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양평군만 해도 면적이 서울의 1.5배인데, 오토바이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지요. 이러다 보니 교통사고 중 60% 이상이 오토바이 사고입니다. 고심 끝에 고안해낸 것이 노인들에게 운전면허 교육을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교육을 받고 장비를 갖추는 등 매뉴얼대로 가르친 결과 오토바이 사고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얼마 전 84세의 노인이 노환으로 타계하면서 ‘오토바이 운전면허증을 관에 넣아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토바이 면허장을 인생의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한 것입니다. 가슴 뭉클했습니다.“

    -양평군의회 의장도 역임하셨는데, 보람있었던 얘기가 있다면?
    ”2020년 양평군의회 의장 재임 시절, 코로나19가 창궐했습니다. 주민 방역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도록 지원한 결과 여타 시군보다 환자를 최소화하는 청정지역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양평은 비닐 하우스 재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시설 교체비가 많이 드는데, 농민의 원예농업과 수박·야채농사를 지원하기 위해 군 예산 50%, 자부담 50%로 배정했습니다. 고향(양평군 지평면)에서 일한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 있습니다.”




    -모교 재학시절의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왜 경찰행정학과를 지망했습니까.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국가관이 서있었습니다. 유네스코 산하 봉사단체인 KUSA 활동을 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 KUSA는 1963년 창설돼 역사가 오랜 기구인데, 저는 1980년 동국대 KUSA 회장을 맡았죠. 농촌봉사활동을 많이 폈습니다. 그렇다고 시위를 안한 것도 아닙니다. 소극적이지만 동료 학생들과 함께 충무로-명동-시청으로 진출했지요. 동국대가 유독 시위가 격렬했는데, 그건 동서남북 도망갈 구멍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번 튀면 기동대가 잡지 못하죠. 사회학과, 사학과, 철학과 친구들이 주동이었고, 경행과는 눈치껏 했죠. 인천 송도로 야유회 갔을 때, 학우들과 함께 시대를 고뇌하면서 통음하던 때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재학시절 기억나는 스승은 있나요?
    “이황우 교수죠. 제 박사학위 담당 교수이기도 했고요. 경찰행정과생은 시위대 앞에 서지 말라고 충고하셨죠. 술을 조금만 먹어도 딸기코가 되는 분인데, 동네 아저씨처럼 다정다감한 분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더 많이 만났죠. 총장 선거에서 1등을 했는데도 2등에게 총장 자리를 뺏긴 불운한 분이셨죠. 총장을 하셨으면 학교를 한층더 레벨업시켰을 겁니다. 비전도 크고, 남다른 애교심과 제자 사랑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교에 바란 점이 있다면?
    “지난해 중앙일보 전국 대학 평가에서 모교가 종합평가 8위를 한 것을 보고 가슴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의 한복판에 큰 캠퍼스를 갖고 있는데, 그런 지리적 요건을 극대화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불교 종립학교인만큼 불교쪽의 지원이 강화되어 재정기반을 튼튼히 해주었으면 합니다. 재정이 튼튼하면 장학 혜택을 통해 전국의 우수학생들을 뽑을 수 있고, 세계적 석학도 초빙할 수 있죠. 앞으로 5대 대학으로 서기를 바랍니다.”

    -총동창회에 바라는 점은?
    “경찰 출신 모임인 경우회가 있습니다. 경우회는 지부, 지회 회원들이 결속할 수 있도록 행사가 있으면 본부에서 재정 지원을 해줍니다. 모교 총동창회 역시 동문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회·지부·학과별·직업별·직능별 동문 모임이 활성화되도록 견인했으면 합니다. 참여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중요합니다.”    

    전진선 군수는 부인 추미정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2자녀들 두고 있다. 자녀들은 장성해 독립해 살고 있다.

    이계홍<65국문학과·총동창회보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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