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미당 탄생 100주년 시낭송 공연
  • 관리자 | 2015.03.09 15:33 | 조회 1777

    시가 읊어지는 한… 시인은 영원히 산다

            

    "단어 하나에 담긴 고심 느껴져" 

                           

    26일 오후 7시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린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 공연에서 배우 윤석화씨가 ‘풀리는 한강 가에서’를 낭송하고 있다. 동국대 제공



    “강물이 풀리다니/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강물은 또 풀리는가.”

    배우 윤석화씨가 서정주의 시 ‘풀리는 한강 가에서’의 첫 연을 읽자 무대 위에 문득 서름이 밀려 들었다. 설움도 서러움도 아닌 서름. 서정주 시어의 힘이다.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낭송 공연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가 26일 저녁 7시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시인과 연극배우, 시낭송가, 가수 등이 참가해 미당의 시 30여 편을 낭송하는 이 자리엔 공연장 정원의 두 배인 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 계단까지 빈틈없이 메웠다. 

    이시영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동천’과 ‘선운사 동구’를 읊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로 시작하는 ‘동천’은 미당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시 중 하나다.
    시인의 고향인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을 노래한 ‘선운사 동구’는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로 유명하다.

    다섯 번째 행“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의 ‘오히려’를 시인은 ‘상기도’로 고쳤다가 ‘아직도’로 바꾸고 다시 ‘오히려’로 돌려놨다가 ‘시방도’로 고치고 마지막으로 선운사 앞 시비를 세울 땐 ‘상기도’로 바꿨다.

     이날 사회를 맡은 유자효 시인은 “미당이 우리말을 툭 던져 놓기만 해도 시가 된다고 할 정도로 시인의 천재성을 칭송하는 말이 많지만 (선운사 동구를 보면) 그가 단어 하나를 가지고 얼마나 고심했던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당의 추천으로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민영 시인은 ‘무등을 보며’를 택했다. 여든을 넘긴 시인은 “스물 두세 살 적 선생님을 찾아가 무작정 시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 난다”며 “지금은 나이가 들어 눈물이 말라 버렸지만 처음 돌아가셨을 땐 그저 엎드려 우는 것 외엔 재주가 없었다”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문정희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꽃밭의 독백’을 낭송하다가 감정이 복 받친 듯 잠시 중단했다가 말을 이었다. “시인은 육신이 죽었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라 시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산다고 생각합니다.”

     

    노래 공연도 이어졌다.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전수자인 박정욱 명창은 미당의 시 ‘신부’를 국악 가락으로 옮겨 이날 초연을 했다.

     ‘신부’는 1975년 출간된‘질마재 신화’ 맨 앞에 수록된 시로, 첫날밤 소박을 맞은 신부가 신랑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재로 화하는 이야기다. 박 명창은 올해 안에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시편들을 공연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저무는 황혼’을 가사로 쓴 동명의 곡을 노래했다. 장 씨는 “세상을 노래하는 건 시인이고 나는 그저 창자(唱者)일뿐”이라면서 “시인들 앞에서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며 웃었다.

     

    이날 공연은 동국대학교와 사단법인 미당기념사업회가 미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여러 기념 사업 중 첫 번째 행사다. 동국대 전략홍보실 측은 미당의 기일인 12월 24일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 서정주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했다. 김동리, 오장환, 김광균 등과 함께 ‘시인부락’을 창간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선운사 동구’ ‘국화 옆에서’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기며 “우리말의 가장 아름다운 꼴”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1940년대 남긴 친일 성향의 시와 80년대 쓴 전두환 찬양시로 문단 안팎에서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관악구 남현동의 봉산산방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2000년 10월 10일 부인 방옥숙 씨가 별세하고 얼마 뒤인 12월24일 세상을 떴다.


    한국일보 황수현기자 sooh@hk.co.kr [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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