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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일병 11년째 ‘530GP 사건’ 묵묵부답, 왜?[

송영인 | 2016.10.22 19:18 | 조회 3401

김동민 일병 11년째 ‘530GP 사건’ 묵묵부답, 왜?

[단독] 국군교도소장 등 관계자 취재 “유족과 김 일병 만남 노력하겠다”

 

면회거절 하겠다는 필체는  “김 일병 필체와 완전 다르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는 국방부 조사본부 산하의 ‘국군교도소’가 있다. 지난 2014년 육군교도소에서 지금의 명칭으로 개칭됐다. 교도소장은 중령(헌병 병과) 계급의 육군 장교가 맡고 있다. 국군교도소에 가려면 7군단 위병소와 헌병대 위병소를 거쳐야 할 만큼 삼엄하다. 이곳에는 군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와 4명의 사형수 그리고 형이 확정된 기결수가 수감돼 있다. 530GP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사형이 선고된 김동민 일병(32)도 11년째 미결수로 있다.

 

연천530GP피격사건전사자유족회(회장 박영섭, 이하 유족회)와 연천530GP피격사건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대표 송영인, 이하 국민협의회)는 9월29일 국군교도소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면담을 신청했다. 그동안 유족들이 김동민 일병에 대한 면회를 수차례 신청했지만, 그때마다 불허되자 국군교도소장을 직접 만나 따지기 위해서였다. 이에 앞서 최근 시사저널에 2014년과 2015년 김 일병과 수감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군교도소장은 유족회와 국민협의회의 면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만남에 부담을 느꼈던지 장소는 ‘교도소 밖’으로 한정했다. 10월11일 기자를 비롯한 박영섭 유족회장과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 등은 7군단 위병소 인근 한 야외카페에서 국군교도소 관계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김성천 국군교도소장(중령), 안동현 교정과장(소령), 김동민 일병 담당 교도관인 김종악 원사 그리고 국방부 조사본부 소속의 교정담당자가 나왔다. 유족회장과 국군교도소장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530GP 사건이 발생한 후 처음이다.

 

김성천 교도소장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나왔다. 동민이가 여기 있느냐 없느냐도 궁금해하실 것 같고 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는 대로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국군교도소 관계자들은 김동민 일병의 수형생활을 자세하게 전달했다.

 

김동민 일병이 사건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연천530GP피격사건전사자유족회 제공

김동민 일병이 사건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연천530GP피격사건전사자유족회 제공


재판 이후 ‘갑상선항진증’ 발병

 

김 일병은 2005년 6월19일 사건 이후 국군교도소에 수감됐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국군교도소에 교도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김종악 원사는 “(사건 이후) 약 5년 동안은 김 일병이 ‘은둔형 생활’을 했다. 종교생활도 하지 않았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교도소 수형자나 교도관들과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밥도 식당이 아닌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이렇게 5년 동안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독거방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김성천 교도소장은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런 것 같다. 김민찬도 5년 됐는데 아직 ‘욱’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한 10년 정도 돼야 적응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김용식 같은 경우는 현재 이발 봉사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찬(26)은 2011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장병 4명을 살해했고, 김용식(41)은 1996년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총기난사로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 일병 담당 교도관인 김 원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다른 사형수들도 20대 때는 많은 방황을 한다.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자신을 내려놓고 교도소의 삶을 받아들인다. 20대의 사춘기를 보내고 나면 삶의 무게를 버리고 나서 이곳(교도소) 사람들과 어울린다. 김용식은 40대인데 신학대 과정 등을 공부하면서 희망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재판이 끝난 후 갑상선항진증(갑상선에서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돼 갑상선 중독증을 일으키는 상태)이 발병해 고생을 했다. 한 6년 정도 치료하고, 7년째부터 조금씩 좋아졌지만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고 한다. 

김 일병의 은둔형 생활은 수감생활 5년째인 2010년이 돼서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혼자 화초도 키우고, 동물을 돌보는 일도 했다. 다른 수형자들과도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끔씩 종교생활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원사는 “적극적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수요일에는 교회도 다닌다”고 말했다. 김 일병이 가장 즐겨 하는 것은 책을 보는 것이다. 주로 판타지 소설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교도소 안에도 금지도서를 제외하고는 책 반입이 가능하다.


 


사건에 대해 부모에게도 말문 닫아

 

현재 사형수는 독거방 수용이 원칙이다. 김 일병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그가 11년 동안 독거방에서 지낸다고 전했었다. 이에 대해 안동현 교정과장은 “교도소에도 소대가 있다. 현재 4개 소대가 있는데, 김동민도 여기저기 소대에서 생활하다 규율을 위반해서 징벌방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소수 인원이 있는 독거방에서 생활한 적도 있고, 지금은 미결수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공간의 독거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계속 독거방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고 다른 재소자들과 혼거방에서도 지냈다는 것이다. 안 교정과장은 “2013년 12월30일부터 지난해 10월29일까지 김용식과 22개월간 혼거수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유에 대해 “너무 혼자 있고 하면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점을 들었다.

 

김 교도소장은 “교도소 독거방을 징벌방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그냥 ‘1인실’이다. 독거방 안에는 TV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징벌방은 따로 있는데, 여기는 TV도 없다. 교도소 안에서는 기결소대, 미결소대, 신입자소대 등 소대 단위로 활동한다. 그렇다 보니 김 일병과 다른 소대에 있었다면 서로 접촉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박영섭 유족회장은 김 일병의 면회 문제를 거론했다. 사건 이후 유족들은 국군교도소에 찾아가 수차례 김 일병 면회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교도소 측은 ‘민감한 사안’이라며 근황이나 교도소 수감 여부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실제 교도소에 있는지 폐쇄회로(CCTV) 화면이라도 보여달라고 했으나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9월26일 오전에는 박영섭 유족회장이 직접 면회를 갔으나 역시 불허됐다. 교도소 측은 “김 일병이 면회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유족들은 이것이 김 일병의 의지인지 아니면 교도소 측에서 의도적으로 접촉을 막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김 일병이 자필로 써서 거부의사를 전해 달라고 했지만, 이것 또한 김 일병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확인시켜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 교정과장은 “면회를 신청하더라도 당사자가 면회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면회 방법은 일단 유선으로 접수한 후 수감자에게 내일 면회가 있다고 말하고 가부를 물어 하고 싶으면 ○란에 체크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란에 표기한다”며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는 절대 면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영섭 유족회장(왼쪽)과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가 국군교도소 소장 등을 만난 후 7군단 위병소 앞을 걸어나가고 있다. © 정락인 제공

박영섭 유족회장(왼쪽)과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가 국군교도소 소장 등을 만난 후 7군단 위병소 앞을 걸어나가고 있다. © 정락인 제공

 

박영섭 유족회장은 “나만 해도 전화로 4번이나 면회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면회가 된다고 해서 오다가 중간에 두 번이나 그냥 간 적이 있다”고 말하자 김성천 교도소장이 “(수감자의) 등급에 따라 면회 횟수가 정해져 있다. 김 일병은 월 4회인데 전화를 받고 보니 면회 횟수가 남아 있어 가능하다고 했으나 동민이에게 물어보니 면회를 거부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는 “교도소장이 직권으로 특별면회를 해 줄 수 있느냐. 오늘 여기에 온 유족 대표라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끝내 김 일병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김 교도소장은 “동민이를 만나서 ‘유족이 너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데 한 번 만나볼래’라고 설득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김동민 일병이 면회하는 것은 가족이 유일하다. 김종악 원사에 따르면, 김 일병의 부모와 누나가 매달 국군교도소를 찾아 아들과 동생을 만나고 간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가족이 면회를 다녀갔다고 한다. 그리고 김 일병은 지금까지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교도관이나 다른 수용자 등에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부모에게도 말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국군교도소 측은 김 일병이 유족들의 면회를 거부하는 증거라면서 자필 ‘거부 메모’를 보여줬다. 사진 촬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 김종명 중위(당시 GP장)의 형 종범씨가 안동현 교정과장에게 전화해 재차 요구했지만, 김 일병이 제출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모 확보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동시에 메모의 필체를 확인했기 때문에 김 일병의 필체가 맞는지 비교는 가능하다.

 

기자는 국군교도소 측이 제시한 메모의 필체와 김 일병의 필체가 맞는지 대조해 봤다. 김 일병이 내무실 생활을 하면서 쓴 수양록의 필체와 교도소 측이 제시한 필체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사진 촬영은 하지 못했지만 필체의 특징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 일병 필체와 완전 다르다”

 

2005년 5월3일과 6월7일 ‘내무실 수양록’에 쓴 김 일병의 필체는 흘림체다. 그러나 국군교도소가 제시한 김 일병의 필체는 정자체이며 마치 여성이 쓴 것처럼 깔끔하다. 한눈에 봐도 필체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영섭 유족회장과 송영인 국민협의회 대표도 “메모 필체와 수양록 필체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를 포함한 세 사람이 모두 동일인의 필체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김 일병이 교도소 측의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김종악 원사는 “지금은 전역한 한 원사(교도관)가 김 일병을 각별하게 챙겨줬는데, 그것이 다른 재소자에게는 특별 관리한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에 국군교도소에서 출소했다는 A씨는 “김동민 일병의 경우 근접거리에 담당 교도병을 배치해서 감시하고 있으며, 다른 재소자가 대화를 시도하면 곧바로 제지한다”며 집중 감시를 받고 있는 게 맞다고 했다.

 

김 일병이 독거방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22개월간 혼거수용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A씨는 “김 일병이 김용식과 같은 방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약 3개월 정도로 기억한다. 내가 출소한 2014년에는 분명 김 일병은 독거방을 쓰고 있었다”며 교도소 측과 다른 말을 했다.

 

또 교도소 안에서 소대 단위로 활동하다 보니 다른 소대에 있었다면 김 일병과 접촉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식사 시간에만 소대별로 움직일 뿐 운동시간 등에는 모든 소대가 같이 활동하며 다른 수용인원과 소대가 다르더라도 대화하거나 하는 것에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

 

박영섭 유족회장은 “우리가 교도소장의 면담을 요청한 것은 김 일병의 수감생활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면회 요청이 번번이 거절당해 교도소장을 통해 그 이유를 직접 듣고 김 일병을 직접 만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며 “우리는 지금도 교도소 측이 의도적으로 김 일병과 유족의 접촉을 막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혹을 해소하는 길은 오로지 김 일병과 유족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11년 만에 530GP 사건 유족과 국군교도소 관계자들이 만났지만, 여전히 평행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 

                                                                            시사저널 정락인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보리고개 굶주림 박정희대통령 없어졌고,

          간첩잡자'는말은 김대중,노무현 때 없어졌다."

                     대한민국 정치는 국회가 망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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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교육은 전교조가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