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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재단이사장 일면 스님의 절도사건 기사

문화재지킴이 | 2015.05.01 10:43 | 조회 4302

동국대 재단이사장 일면 스님의 문화재 절도 사건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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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화 도둑 잡고 중노릇 꼬인 혜문스님                                            

[인터뷰] “분실로 무마된 흥국사 탱화 절도사건…일면 스님 절도 확인한다"
일면 스님 "당시 호법부 조사로 문제 없다 해명된 사건"
                                                                                                                                                                     
                                         
2015년 05월 01일 (금) 03:03:22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동국대 일면 이사장의 지난 2004년 문화재(탱화) 절도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이 <불교닷컴> 취재진의 거듭된 요구에 어렵게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스님은 “분실한 것”이라는 일면 스님의 해명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증거를 조목조목 말했다. 스님은 ▷탱화를 보관하던 비구니 증언 ▷진본과 같은 모사품이 걸렸던 점 ▷진본의 보존 상태가 양호했던 점 ▷당시 일면 스님의 태도 등을 근거로 흥국사 감로탱은 분실이 아닌 '절도'였다고 했다.

스님은 “스님들 사이에서 은처‧도박 등 다른 범계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매불‧훼불은 용납이 안 되는 중대범죄이다. 성보가 잘못되면 절도 스님도 존재 의미를 위협받는다. '생산시설' 파괴이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면 스님은 취재진과 대면 접촉, 전화, 문자메시지, 서면 등 다양한 반론 요청에서 혜문 스님의 주장을 전면부인하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탱화 절도는 승가 근간 흔든 사건”

혜문 스님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스님은 약탈된 우리 문화재 오쿠라 컬렉션을 일본으로부터 돌려받기 위해 국제박물관협회(ICOMM) 사무총장을 만나고 왔다.

스님은 지난달 말께 귀국 직후 <불교닷컴>과 인터뷰했다. 이후 청담동 벙커에서 진행된 ‘정봉주의 전국구 생선향기’에 출연해 문화재 절도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스님은 “일면 스님 문제는 승려로서 승가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다. 그의 권력 때문에 다수가 침묵하고 있지만 주지가 불상‧탱화를 팔면 남아날 절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10년 전 내가 탱화 도둑을 잡았다. 도둑인 일면 스님의 권력이 커서 되레 도둑을 잡은 내가 혼났다”고 했다.

“탱화 도둑 잡은 뒤 중노릇 꼬여”

스님은 “당시 일면 스님은 봉선사 주지에서 쫓겨난 후에도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때 나는 사바세계가 어떤 곳인지 절감했다. 최근 내가 환속하겠다고 말한 것도 일면 스님 때문에 중노릇이 꼬인 탓이다”라고 했다.

스님은 “원래 문화재에 관심도 없었다. 선방이나 다니고 있었을지 모른다. 일면 스님 덕에 일본으로 도망가게 됐고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면 스님이 내 인생에 큰 계기를 만들어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日(일)’자 들어간 나라인 일본을 (약탈해간 문화재를 내놓으라며) 10년 동안 괴롭혔다. 이게 다 ‘日(일)’자 들어간 일면 스님 덕분이다”라고 했다.

“문화재 범죄는 권력형 범죄”

스님은 “고등지식을 가진 사람, 돈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 문화재 범죄이다. 때문에 문화재 범죄를 지식인 범죄, 권력형 범죄라고 말한다. 문화재 범죄는 국가권력 등 기득권이 저지르는 범죄”라고 했다.

이어 “도둑놈이 경비를 세워 훔친 물건을 지킨다. 이는 문화재 환수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했다.

스님은 “내가 나서기 전 사람들이 주로 문화재를 훔쳤다. 자랑 같지만 세계에서 2건 이상 문화재환수를 성공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

스님은 “한국에 악의 무리가 준동하고 있어 저승사자처럼 잡으려고 검정 옷을 입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면 스님 사건은 지난 2004년 발생했다. 내가 직접 잡으러 갔던 사건이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건이다”라고 했다.

“악행 저지른 사람이 종립대 이사장?”

스님은 “그동안 잊혀 졌다가, 지난 2004년 문화재 절도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일면 스님이 조계종립 동국대 이사장을 하면서이다. 10년 전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조계종 총무원장과 맞먹는 동국대 이사장이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이어 “중노릇을 하면서 남과 타협하지 않는 자기신념이 내게는 있다. 흥국사 탱화 사건에 대한 내 입장은 일면 스님은 일체의 공직에 취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면 스님은 당시 나와 약속도 했다”고 밝혔다.

스님은 “일면 스님과의 개인감정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몸을 던져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라는 것이 문제”라며 웃었다.

  
▲ 흥국사 사자탱. 1792년 제작된 것으로 화기에 적혀있다. <봉선본말사 성보문화재>에 따르면 되찾은 문화재로 분류해 놓았다. 다른 사찰로 유출된 것을 환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봉선사


다음은 혜문 스님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흥국사 탱화 사건의 전말이다.

지난 1998년 은사 철안 스님이 “다도에 오래 정진한 비구니가 있다”며 나를 남양주 한 사찰에 데려갔다. 은사스님 말씀처럼 비구니스님이 우려낸 차 맛이 좋았다. 특이하게도 비구니스님은 동요를 틀어 놓고 차를 마셨다.

동요를 들으며 순진무구하게 사는 비구니스님의 다실에 저승사자 그림(흥국사 탱화)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그려진 탱화였다. 다도를 하는 사람 가운데 일본 사무라이정신을 흠모하는 사람이 있어 그래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구니스님은 탱화 속 일직‧월직사자를 저승사자가 아닌 신중, 금강역사로 알고 있었다. 물었더니 “누가 줬다”고 비구니스님이 답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누가 줬는지 알면 사람들이 나를 잡아 죽일 텐데”라고 했다.

나는 칼에 관심이 있다. 1998년 당시 우리가 아는 칼 차는 방식은 일본식이었다. 조선 방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조선검은 어떻게 차고 발검 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일직사자가 칼자루를 뒤로 하고 있었다. 그림을 정확히 기억하게 된 이유이다. 경전‧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기억력이 보통사람보다 좋기도 했다.

2004년 봉선사 본‧말사 성보도록 발간을 위해 흥국사 지장전 탱화를 조사했다. 탱화를 보는 순간, 1998년 비구니절에서 본 그림과 똑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칼을 찬 모습이 똑같았다. 다만 흥국사에 걸려있던 탱화는 새로 조성한 티가 났다. 화기가 빠져있었다. 지장전 안의 다른 탱화들은 화기가 있었다.

사자탱은 시왕탱의 부속으로 12점이 한 세트이다. 흥국사 지장전의 나머지 탱화들과 비구니절 탱화는 1792년 조성했다는 등 화기가 같았다. 비구니절 탱화와 똑같은 모습으로 흥국사에 걸린 탱화에만 화기가 없던 것이다.

훔쳐서 빼돌린 것이라는 촉이 왔다. 비구니절로 찾아갔다. 비구니는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옮긴 뒤였다. 탱화가 너무 좋아서 다시 보러왔다고 하니 캐비넷 안에 넣어둔 것을 꺼내 보여줬다. ‘수락’과 ‘흥’자를 화기에서 재확인했다.

봉선사로 돌아와서 봉선사주지스님, 국장스님, 흥국사주지스님에게 사실을 알렸다. 탱화를 찾았다고 알렸는데 소식이 없었다. 누가 그랬을까 고민해 보니 1983~1996년 일면 스님이 흥국사 주지를 지냈을 때 유출된 것을 알았고, 모두 입을 닫아버렸다.

흥국사에 공문을 보냈다. 당시 주지가 인수인계 때 탱화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두들 일면 스님이면 사건이 크다고 했다.

나는 머리를 써서 총무원 호법부에 “도둑놈 잡으러 가자”고 알렸다. 2004년 5월 6일 봉선사 문중회의가 있던 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당시 호법과장과 직원이 가평 비구니절을 나와 함께 급습했다. 호법부 직원들에게 “내가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나만 들어갔다.

비구니스님에게 “다 알고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비구니스님 안색이 굳어졌다.

나는 “밖에 호법부 직원이 있다. 일면 스님이 준 것 다 안다”고 말했다.

비구니스님은 “다 알면 말하면 되지, 왜 호법부 직원까지 데리고 왔느냐”며 순순히 탱화를 내줬다.

그 날, 호법부가 탱화를 가져갔다면 증거는 인멸되고 사건은 끝났다. 그래서 나는 사형에게 “조실스님 방에 둬야 겠다”고 연락해 호법부를 따돌릴 수 있었다. 조실스님은 문중회의에서 “흥국사에서 도난당한 탱화를 혜문이가 가져왔다”고 모두에게 말했다.

도둑놈을 잡아왔는데 사람들은 나를 경계했다. 말사로 몸을 피했더니 그 절 주지스님이 내게 “일면 스님이 알면 큰일 나니 절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일면 스님에게 연락이 왔다. 불암사로 찾아갔다. 일면 스님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은유적으로 내게 “한번 봐 달라”며 “본인 불찰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미안하다”고 했다.

이것은 일면 스님 자신이 탱화를 가져갔으니 나를 불러서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나 같은 새끼 중을 만날 이유가 뭐가 있었겠나?

일면 스님이 내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해서 20분 동안 중노릇 하는 법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다. 훔친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것이었다면 내 잔소리를 왜 들었겠나? 

잔소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함부로 본인 권한 남용해선 안 된다. 나는 내 신념에 어긋난 사람은 용서치 않는다. 용서할테니 광동학원 이사장 등 모든 공직에 사표를 내라”고 했다.

일면 스님은 “광동학원 이사장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시라”고 했다.

이후 잘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그 사건을 하극상으로 규정했다. 나를 혼내주겠다는 사람이 생기니 내 방에 못을 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두 일면 스님 편에 서서 나를 혼내니 마음이 상했다. 망명하는 심정으로 일본으로 도망갔다.

당시 조사했던 내용을 정리해보면 탱화를 갖고 있던 비구니는 자매였다. 언니 비구니가 일면 스님에게 받았고 환속해서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동생 비구니에게 준 것이었다.

사람들은 추문 등을 의심하기도 한다. 나는 일면 스님이 그 정도의 XXX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사에 쓰라고 줬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물론 이해 안 되는 부분 많지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일면 스님은 본인의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면 스님은 자술서에서 “처벌이 두려워 분실한 것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구니스님은 “청계천에서 탱화를 샀다”고 했다.

분실이 아닌 이유는 ▷더 값어치 나가는 지장시왕도를 두고 왜 사자탱을 훔쳐간 것 ▷1m 20cm*1m50cm 크기의 탱화를 떼어 가려면 망보는 사람 등 6명까지 필요하다. 왜 지장전 안에서 제일 싼 것을 가져갔느냐는 것이다. ▷전부 칼로 오려 가면 되는데 끈까지 곱게 가져간 것은 모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본보기를 든다. 지난 2000년 완주 한 사찰에서 불상‧탱화가 사라졌다. 알고 보니 주지가 도둑과 짜고 빼돌린 것이었다. 그때 주지는 망을 봐줬다.

호법부에서 일면 스님을 조사할 때 나는 일본에 도망가 있었다. 대신 ①흥국사 도난 조사보고서 ②흥국사 환수 보고서를 남겼다. 그럼에도 일면 스님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바세계가 이렇구나 하고 느꼈다.

일면 스님이 내게 했던 약속이 “공직에서 물러나고 일체 공직에 취임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일면 스님은 공직을 해왔고 동국대 이사장까지 됐다.

나는 광동학원 이사장 임기가 다 되서 일면 스님이 그만둘 줄 알았다. 일면 스님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 이사장을 뽑아야 하는데 봉선사스님들이 이사회에 안갔다. “급한 일이 있다” “배가 아프다” 등 이유였다.

결국 일면 스님이 다시 광동학원 이사장이 됐다.

그때 알았다. 세상은 의협심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면 스님이 내게 안 걸렸다면 일찌감치 총무원장 한다고 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속퇴를 결심했다. 절집에 들어와 입은 시은에 보답코자 50가지 프로젝트를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2월 50가지를 모두 완수했다.

내게 걸린 일면 스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내가 중노릇 그만둔다고 하니 일면 스님 등이 얼마나 좋았겠나. 내가 환속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지… 그새 동국대 이사장이 됐다.

내 신념은 일면 스님 같은 사람이 이사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지른 악행에 대해 객관적 진실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사실전달은 충분히 된 것 같다.

나는 흥국사 탱화를 일면 스님이 훔쳤다고 확신한다. 일면 스님이 왜 일직사자를 건드렸나. 그 그림을 그린 것은 나쁜 짓을 하면 일직‧월직 사자가 잡아간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내가 알고서도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월직사자가 나를 잡아갈까봐 오늘 이야기 하는 것이다.

불교는 파사현정이다. 정의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삿된 것을 깨뜨리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일면 스님, 사실확인 질문에 답변 안해

이 외에도 혜문 스님은 “일면 스님이 비구니스님에게 탱화를 건네면서 ‘10년만 잘 갖고 있으면 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비구니스님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의 주장에 대해 일면 스님은 지난 3월 <불교닷컴>과의 통화에서 “호법부 조사를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된 사건이다. 더 이상 왈가왈부 말라”고 했다.

최근 <불교닷컴>이 일면 스님에게 비구니스님 발언 부분을 물었을 때는 스님은 “그런 말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교닷컴>은 일면 스님에게 우편과 SMS를 통해서 혜문 스님 주장 관련 사실을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는 진정서 접수 1년 후인 2005년 일면 스님에게 ‘징계회부유예’ 결정을 내렸다. 총무원 관계자는 “죄가 없다는 게 아니다. 호법부 조사 당시 탱화가 회수됐다는 점을 참작해 징계회부를 유예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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