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입춘시 2편 - 박제천

최고관리자 | 2018.02.06 10:02 | 조회 1097
    내게는 '입춘'을 노래한 작품이 두 편이다.  아래의 정종복 화백이 그린

  '입춘부'는 2006년 '동국대 건학 100주 기념 시화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입춘부

 박 제 천(국문63, 문학아카데미 대표)

 

고로쇠나무에 등을 기댔더니,

어느 순간 서늘한 손길
아, 요녀석이 내게 지금 氣를 보내오는구나


고로쇠나무 잎으로 손부채를 만들어
고로쇠나무의 물을 한 모금 먹었더니,

뱃 속이 서늘해진다
요녀석이 지금 내 뱃속을 제 세상으로 만
드는구나


머잖아 내 눈, 내 입, 내 귀에서도
푸른 눈이 트고,
고로쇠나무의 어린 잎이 하나 둘 돋아나겠
구나


이 봄엔 나도 고로쇠나무가 되어
뿌리 아래 갇혀 있던 봄 기운을
물관이 터질 듯 타고 오르는, 이 솟구치는
노래를
전해주어야겠다


그리운 이가 등을 기대면

 


입춘날, 운주사 빈터에 배를 띄우고 싶다

코가 깨진 미륵보살,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문둥이보살,
얼굴마저 지워진 크고 작은 돌부처,
나 몰라라 잠을 자는 기왓장 보살이 모두 모이는 곳

 부뚜막귀신, 대들보귀신, 보리뿌리귀신, 동서남북 오방신,
여기서는 모두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는 곳

 햇빛 좋은 입춘날,
눈이 부신 햇빛 거울로,
제 마음속, 무덤속 어둠을 불살라,
보살도 부처도 잿더미가 되고 마는 날.
돌쩌귀를 열고 나오는,
 얼음장을 깨고 나오는,
겨우내 내린 눈을 가슴으로 껴안아 녹인 물로 가득가득 속을 채운 냉이며 달래,
움파며 승검초,
죽순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