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한국시인협회장“이번에 플라멩코를 보니 목이 꺽꺽 메었어요. 어린 시절 듣던 남도의 판소리와 육자배기, 미친 여자들의 춤, 장돌뱅이의 몸부림이 다 들어있더라고.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 오만불손한 아름다움에 매료됐지요.” 지난달 스페인 ‘책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문정희(68) 시인은 마드리드에서 본 플라멩코를 이렇게 말했다. 그가 몇 년 전 멕시코에서 본 플라멩코는 관능적이었다. ‘햇살 가득한 대낮/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응”’(‘응’ 일부)이라는 시가 그때 나왔었다. 여전히 ‘문학의 도끼’를 들고 자신의 삶을 깨우고 있는 문 시인에게 어떤 깊이가 더해진 걸까. 여성의 대지적 생명력을 꿈틀대는 관능의 언어로, 활달한 사유로 망설임 없이 노래해 온 문 시인은 한국시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열어왔다. 그의 시들이 국내·외에서 계속 애송되는 건 시들지 않는 이런 싱싱함 때문이다. 가부장적 폭력성에 맞선 시로 그를 평단 일각에선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로 꼽기도 한다.지난해부터 한국시인협회장을 맡은 그는 이전부터 외국문학계의 초청으로 해외 나들이가 잦았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부근 호텔의 커피숍에서 문 시인을 만났다. 세르반테스 기일에 맞춰 열리는 스페인 ‘책의 밤’ 행사에 그는 소설가 공지영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가했었다.
―스페인어권에서 한국 시에 대한 반응이 궁금한데.
“내 시집 ‘나는 문이다’(2007)가 스페인어 ‘요 소이 문’(Yo soy moon)으로 지난해 가을 번역됐어요. 그 덕분에 지난 2월 쿠바 아바나도서전에 한국 최초로 참가했고 이번에도 초청을 받았죠. ‘나는 문이다’의 전체적인 주제는 생명, 여성,
사랑이거든요. 우리로 치면 홍대 앞 같은
문화의 거리에 설치된 부스에서 그것을 주제로 한 짧은 강연과 스페인 여성작가 3명하고 대담을 했어요. 열띤 분위기였고, 생각지도 못한 호응이었어요. 세르반테스를 낳은 ‘문학 종주국’에서 시가 살아있구나,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문 시인의 시는 10여 개 언어권에서 출간됐고, 2010년엔 스웨덴의 ‘시카다상’을 받았다. 그의 시는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오차가 아주 적다는 평을 듣는다. 주제의 보편성도 있지만, 비비 꼬지 않고 탁 터지는 직선적 시어가 언어 장벽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 시가 정열적인 스페인어권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스페인이 주는 열기는 제국주의적인 권위와 전통에 대한 자부가 있으면서도 플라멩코나 투우로 표현되는 어떤 천부의 광기, 피, 햇살…, 그런 거죠. 스페인 청중들도 내 시에 쉽게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신은 굉장히 스페인권에 어울린다는 청중도 있었고. 내가 그쪽 문화권인 파블로 네루다 등의 시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내 피 속에는
아마 스페인의 햇살과 피가 DNA처럼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본 플라멩코는 달랐나요.
“저는 여성시인이지만 감상을 혐오해요. 하지만 이번에 본 플라멩코는 내가 호남의, 남도의 딸로서 밑바닥에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들었던 판소리, 육자배기, 미친 여자들의 춤, 장돌뱅이의 몸부림이 다 있더라고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어요. 내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면,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모어(母語)가 굉장히 영향을 미쳤죠. 호남의 판소리적 과장 어법이랄까, 그런 것이 내 뇌파 속에 심어졌고. 열한 살 때 혼자 광주로 유학을 가, 엄청난 외로움이 밀려왔던 것도 좋은 문학의 모태를 이루지 않았나 싶어요. 6·25전쟁 후 열한 살까지 뛰놀던 황폐한 남도의 자연도 있을 테고.”
그에 따르면 자신을 시인으로 키운 두어 가지 중 어머니와 남도의 소리와 들판이 그 첫 번째다. 이번에 플라멩코는 그것을 건드려 공명시킨 것 같다.
“마드리드 명품거리엘 갔더니 서점이 있고 가장 좋은 테이블에 시집이 있었어요. 스페인의 국력은 쇠락했다지만, 문학의 일등국으로서 충분히 고개가 숙어지더군요. 돌아와 우리 주변에 횡행하는 최하류의 언어들…, 그것들이 흙탕물처럼 느껴졌어요. 정치적 언어들도 좀 세련되고 멋있을 수 있잖아요. 어떻게 입에 그런 언어를 품고 다니는지.”
‘광기와 예술’의 나라에서 돌아와 문 시인은 곧바로 “답답하다”고 했다. 보궐
선거와 연금개혁 등으로 정치판의 주판알을 굴리는 뉴스가 온통 시끌시끌하던 때였다.
―우리 사회가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이든 기댈 곳 없이 어렵습니다. 시가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너무 절실하고 평생 해온 질문인데…. 그런데 사회에 이익이 돼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하고, 그런 시도 있겠으나 저는 실제로 그걸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는 존재함으로써 그 자체가 위로를 줄 때가 있고, 자극을 줄 때도 있는 거지. 꽃이 피었다 해서 그것이 위로를 주려 한 건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고. 시인이 헤쳐오고 가꾸어온 삶과 언어가 그냥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 다라고 봐야죠.”
―시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인지.
“사람들이 시를 갈증 하는 데 그걸 덜어주지 못한다면, 시인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봐요. 시가 어렵고 제대로 닦이지 않은 엉성한 채로 발표되는 게 많아요. 과잉이 더 나빠요. 쉬운 시가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암실에서 혼자 지껄이던 암호문 같은, 무당의 주문 같은,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미성숙 작품을 쏟아내면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키겠냐는 거죠. 나에게 어떻게 쑥쑥 시를 쓰느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수천 번 고쳐요. 최근에 내 시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때, 그것은 어렵고 복잡한 시에 대한 실망의 상대적인 효과라고 봅니다.”
그는 지난해 말 발표한 시에서 ‘속도와 물신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지만/시간의 검푸른 이끼 속으로 빨려들어 갔어요/이윽고 내 안의 늙은 독재자가 나를 덮쳤어요’(‘독재자에 대하여’ 중)라고 시인으로서의 쉽지 않은 삶을 고백했다.
“제가 성인으로 살아온 50년이 한국사회로서는 속도와 경제가치가 극대화된 시기예요. 이런 사회는 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죠. 이 말도 안 되는 시를 가지고, 이 미약한 향기로 생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고, 무모한 모험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을 견디고, 견디고, 거기까지 언어로 투시하는 힘을 가져간다면 흔들리지 않는 자기 것을 성취하겠지요. 제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고 노력하기는 합니다.”
―어려서부터 ‘문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는데, 문학적 재능은 어떤 건가요. 문학의 경락(經絡)이 뚫린 분들이 시인이 되는가요.
“중등학교 시절 전국 백일장을 제패하고 막상 대학에 가 전공을 할 때 ‘과연 내게 재능이 있나’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백일장엔 자신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문학과 부딪히니 재능이란 하찮은 거더군요. 결국 삶과
생활에서 시가 나오는 거죠. 타고난 재능은 어머니와 남도의 자연과 소리, 어려서의 고독에서 나왔다면, 서울로 와서
공부하고
결혼해 뉴욕 유학까지
공간이 확장되면서 사고도 같이 넓어지며 변모했던 것 같아요. 내 시가 나이가 들수록 힘이 세진다는 것도, 지난한 삶 속에서 단련된 때문이죠.”
‘저녁 현관문이 열리고 결혼이 들어온다/추위와 무더위 속에서도 굳건한 고려와 조선과/일렬횡대의 전주 이씨 족보가/든든한 서방님이 들어오신다/신사임당이 어우동에게/시(詩)를 숨기고 나가 있으라 눈짓한다’(‘퇴근시간’ 중 일부) 그는 여성들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시들을 여럿 발표했다. 이로 인해 페미니즘 시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이다.
“내 시를 페미니즘 시로 묶으려는 건 음모예요. 여성시로, 페미니즘 시로 묶어 문학사에 정식 인양을 안 하려는 것이에요. 내 시가 궁극적으로 노래하려고 하는 게 생명이요 사랑이지,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에요. 페미니즘 시라는 하나의 굴레를 씌워 나를 배제하려는 문학의 기술방식을 단호히 거부해요. 자궁이라는 것이 여성의 몸에 있지만, 인류의 몸에 있는 것이듯 말이죠.”
문 시인의 ‘남편’이란 시는 중년 이상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자주 읊어진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돌아누워 버리는/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남편’ 중 일부)
“내 시에서 늘 남편은 악역의 모델이죠. 미안하고 고맙죠. 그 사람도 재미있어하고. 그 사람한테 시 ‘남편’에 대해 질문이 많은 모양이에요. 그러면 ‘아내’라는 제목으로 이름만 바꾸면 자기 심정이라고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문 시인의 작품에서 사랑과 욕망은 빼놓을 수 없다.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싱싱하게 몸부림치는/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거대한 파도를…’(‘다시 남자를 위하여’ 일부)도 인기 목록에 오른 시다.
―사랑과 욕망이 여전히 성성하신가요.
“그야말로 치명적인 연애를 못 해본 것, 이것이 늘 시인으로서 열등감이었어요. 몰락, 파멸, 벼랑, 이렇게 치명적인 연애를 한 번 못해 본 시인이 창피하고 그랬었어요. 너무 뻔뻔하게 가정을 유지하는 것 같고, 애들 잘 키우고, 제사도 지내고, 학교 교수도 하고, 그러면서 시 속에서는 온갖 엄살을 떨고.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연애, 이미 한 것 같아요. 충분히 탐미나 관능시를 쓰기에 어렵지 않으니, 구체적 사건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요. 욕망도 여전하지만, 요새 내가 나를 연애하는 여자로 설득하기가 어려워요. 가장 화가 나는 칭찬이 뭐냐면 ‘아직도 너무 고우세요’하는 거예요. 곱다는 것은 노인을 묘사하는 단어니까. 너무 매력 있어요. 이게 좋아요. 치사해서 에이, 관둬라. 연애 따위 차버리기로 했어요. 그런데 지뢰를 사방에 깔아 놓았으니 누가 밟으면 막지는 않겠어요, 하하하.”
그는 이미 시로 답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되고 말았다//(…)사랑하는 사람아/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비망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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