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4대가 동국가족 이재창 모교 명예교수
  • 관리자 | 2014.07.08 17:13 | 조회 1335

     동국은 우리 가족의 영원한 고향

    아버지-아들, 딸-손녀까지 동국과 인연은 운명적(?) 




    모교가 올해로 개교 108주년을 맞았다. 1906년 명진학교로 설립허가가 나면서 1940년 혜화
    전문학교로 개칭된 모교는 해방 이듬 해인 1946년 동국대학교로 승격되면서 국내에 유일한 불교종단학교로 자타공인 3대 명문사학으로 그 명성을 떨쳤다. 이제, 그 한세기를 견뎌온 무게와 이름을 책임져나가야 할 중심에 우리 25만 동문들이 서있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 모교와 인연을 맺어 입학하고 동국대학교 졸업장을 받은‘4대 동국가족’이 있어 참으로 경이롭고 자랑스럽다. 거기 더해 처가 쪽에서도 여러 사람이 우리 모교 출신이라고 한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동국학원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한국불교 조계종 재건의 주역이면서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정치가로 활동하면서 세찬 격랑의 시대를 선도했던 지암 스님(속명 이종욱. 1906년 명진학교)의 아들이신 모교 명예교수 이재창(51/55 경제)동문과 그 가족이다.

     

    초여름 해가 한참 따갑던 5월 하순 어느 오후, 외각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이 동문의 댁을 찾았다. 은발이 성성한 80노구로 아파트 현관까지 나와 살갑게 맞아주시는 이재창 동문께 지암 스님에 대한 기억부터 물었다.“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한없이 인자하셨지만 난 언제나 아버지가 무서웠어요. 부산에서 학교 다니던 피난시절에 서울대학에 들어가려고 입학원서를 사다 보여드리고 도장을 찍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동국대학의 이사장인데 아들인 네가 다른 대학에 가서 되겠냐 하시드라구.”부친의 준엄한 뜻을 좇아 그는 그 길로 동국대학에 원서를 냈고 모교와 인연을 맺었다.


     이 동문은 자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부친의 지극한 효심 덕이었노라며 웃었다. 병약했던 지암의 생모는 출산 2주가 채 못되 숨을 거뒀고 어린 지암은 피는 안 섞였으나 친자식처럼 정성으로 거둬주던 양어머니의 손에 자랐는데 그녀를 몹시 따르며 좋아했다고 한다. 훗날, 세랍 36세가 되던 때부터 오대산 월정사의 주지대리 등 상직을 맡아 분주해진 지암은 양어머니를 지척에 모시고 공경하고픈 마음에 품행이 단정한 같은 절의 보살과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 동문의 생모가 되시는 그 보살에 의지해 양어머니께서는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조부의 그런 훌륭한 덕(德)을 이은 것일까, 먼저 간 아드님 이학용(모교 전자전기. 작고)동문이 했어야 할 몫까지 더해 이 동문의 장녀 현정(모교 언론정보대학원. 시민운동가)씨와 차녀 선용(모교 연극영화. 전 KBS 공채 탈렌트. 상해 거주)씨 또한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남다르다고 하는데--. 모교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4대 손주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현재 자기 분야에서 전문 역량을 발휘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처남을 비롯해 처조카와 동서 등 처가에서도 모교를 나온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동문님의 권유나 독려가 있었던 건 아닌지요?”그런 일은 전혀 없노라, 인터뷰 중 처음으로 소리내 웃는 이재창 동문. 참 신기하게도 부인 원연희 여사의 가운데 이름자도 한자로 연꽃 연(蓮)을 쓴다고 하니 이 집안과 불교, 아니, 동국의 인연은 가히‘운명적’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모교 재직 시, 동국발전에 큰 몫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본인의 치적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치적이라 할 게 있겠습니까마는 불교대학원을 출범시키고 초대 불교대학원장을 지낸 것이 큰 보람으로 여겨지네요. 당시 총장이셨던 지관스님께서 큰 힘이 되주셨어요.” 지난 93년 정년으로 퇴임한 이재창 동문은 모교 봉직만 35년여년.


    “-동국대학교-하면 국내 3대 명문사학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다시 그 불씨를 살릴 이들은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입니다.”동국을 사랑하고 꿈꾸는 뜨거운 그의 의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친을‘친일’로 몰아세우는 안타까운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음을 언급, 한국불교의 중흥과 독립운동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던 부친의 진실이 언젠가 꼭 밝혀지리란 희망을 안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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