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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평전 ' 펴낸 김택근 작가를 만나다
  • 관리자 | 2017.02.22 16:13 | 조회 2568

    물거품 같은 탐심 버려진 무인도서 생명·평화를 찾노라


       
    ▲ ‘성철 평전’ / 김택근 지음·원택 스님 감수 / 모과나무

    김택근(75/79국문,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동문이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큰스님의 생애를 다룬 ‘성철 평전’을 출간하고 2월8일 조계사 역사박물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2010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김대중 자서전’을 대표 집필했으며, 저서로 ‘사람의 길 -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 산문집 ‘뿔난 그리움’,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이 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 기사는 법보신문의 기획연재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김택근 작가편'이다. [편집자 주]



    1983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
    문학 스승 신대철 시인 영향 커

    종립 동국대 국문과 졸업한 뒤
    ‘경향신문’서 30년 언론계 종사
    ‘매거진X’로 언론 새지평 열어

    따듯한 문체로 생명 관련 글 써
    도법·지율 스님 등 불연 남달라
    김대중·권정생·성철 삶 집필
    “꽃 주제로 한 장편동화가 숙원”

    빼앗긴 들에 봄은 오지 않는다.

    양심과 연민 잃고 탐심에 젖은 이에게 평화와 행복은 물거품일 뿐. 시인 신대철은 ‘무인도’에서 갈파했다.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로 가고 있다”고. 고통으로 쓴 바다[苦海]는 누가 만들었나. 우리네 삐뚤어진 마음이 빚은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렇게 탐심 스며든 바다는 물거품으로 토해내지 않고선 견딜 수 없다. 무인도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바다 같은 사내가 있다. 역시 무인도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방향은 놓치지 않고 있다.  시인 황지우 시처럼 “헤매고 있는 사람은 찾고 있는 사람”이니 무인도 곧 모습 드러내지 않을까.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고독한 양심과 연민이 그 사내에게 닿았다. 김택근 작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이 김택근이란 문을 두드렸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감성에 가만가만 발을 들였다. 그때부터다. 김택근은 기자생활 30년 동안 쌓은 눈썰미와 부지런함으로 팩트를 찾아 헤맸고, 감성적인 문체로 삶을 그려냈다. 굴곡진 한국사를 살다간 큰 별들이 그의 글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그분들과 인연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신문지면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절 직접 찾았고, 생전에 인터뷰한 기자가 저뿐이었던 권정생 선생 기사를 본 출판사 관계자가 저를 찾았고, 스님 관련 글을 본 불교계에서 저를 찾았지요. 자신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삶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2004년 봄, ‘경향신문’에 재직 중이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름을 받았다. 자서전을 집필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몇 차례 칼럼을 썼을 뿐, 한 차례 만남은 악수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향한 그의 애정을 봤으리라. 몸이 편치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막 불붙기 시작한 한류와 우리 민족의 문화창조력의 우수성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가장 절망적인 시간에 가장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해서 그는 2006년부터 2년 동안 41회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받았고, 관련 인물과 수많은 인터뷰, 국정노트와 일기, 육필 메모 등 미공개 자료들을 살폈다. 6년 동안 쓴 200자 원고지 5600장을 ‘김대중 자서전 1,2’로 엮었다. 그리고 당시 인연과 추가 취재, 그의 관점을 더해 ‘인간 김대중’을 2년간 다시 한 번 써내려갔다. ‘새벽-김대중 평전’이다. 그는 평전의 시작을 이렇게 적었다.

    “새벽은 눈물로 열렸다. 사형수가, 야당 후보가, 서자가, 섬사람이, 네 번의 도전 끝에, 70대 고령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암흑시대에 지지자들이 흘린 눈물, 그 눈물의 강을 타고 올라가 마침내 단 한 사람이 됐다. 척박한 현대사를 갈아엎는 기적이었다. 우리네 새벽에는 김대중의 눈물이 고여 있다.”

    권정생 선생은 1990년 기자 중 유일하게 인터뷰를 성공했던 일이 인연이 됐다. 사실 출판사 제의를 받고 저어했다. 막 김대중 자서전 탈고를 한 뒤라 글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권 선생 방에 걸려 있던 사진 하나가 맘에 걸렸다. 동학농민혁명에서 한국형 민주주의 시원을 찾고 전봉준 장군을 높게 평가했던 김 전 대통령이 떠올랐으리라. 한 사람 눕기에 적당한 관 크기만한 작은 방에 걸려있던 사진이 바로 전봉준이었다.

    “단순히 동화만 쓰는 사람은 아니구나.” 세상을 바꾸려던 전봉준이었다. 의미심장한 이 작은 일화는 그가 펜을 들고 권 선생 일대기를 동화형식을 빌려 ‘강아지똥별’로 펴낸 이유였다. 병마에도 동화에서 순수한 사람을 찾으려고 헤맸던 권 선생의 삶은 그가 마지막 문장에 담았다.

    “하늘에 새로운 별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흔한, 그래서 가장 귀한 강아지똥별.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장 슬픈 시간에 나타납니다. 가난하고 약한 것들의 기도와 눈물 속에만 내려옵니다. 당신이 울고 있으면, 당신 머리 위에 슬픈 별이 있습니다. 강아지똥별은 오늘도 내려옵니다.”

    이후 생명, 평화,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에게 성큼 불연이 다가왔다. 종립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재학 시절 동대신문 기자와 편집장을 지내 스스럼없는 불교였다. 그러나 사실상 도법 스님과 지율 스님과 인연이 불연이 깊어진 계기였다. 주말이면 생명평화순례를 함께했고 ‘사람의 길-도법 스님 생명평화순례기’로 정리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할 때 처음 뵌 지율 스님이 그의 글을 좋아한다며 청한 만남으로 관계가 이어졌다.




    “생명평화순례 글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글이었어요. 불교적 소양이 없어도 쓸 수 있었습니다. 생명평화가 당시엔 제법 신선했어요. 불교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는구나 싶었지요. 지율 스님은 뵙고 난 뒤 단식한 이유에 공감해 몇 번 칼럼으로 응원을 보냈습니다. 스님이 계셨던 여주 신륵사를 찾기도 했는데, 차를 내주시던 그 앙상한 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를 풀어낸 시점은 ‘법보신문’에 ‘달빛 걸음으로 산사에 들다’ 연재를 시작하면서다. 2년 동안 천년고찰 역사 속에 서린 생명붙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산사에 드는 길에서, 산사가 깃든 자연에서, 사람과 동물이 기대고 있는 산사에서 길과 자연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불연 무르익자 큰 어른 성철 스님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권정생 선생과는 달리 일면식도 없었던 스님이었다. 언론으로 알게 된 스님의 열반에 가야산 일대가 수십만 추모인파로 가득했다는 소식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런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서운함이 희미해질 무렵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에서 원고 청탁이 왔고 ‘참선 잘 하그래이’에 실렸다.

    결국 행장을 정리하는 일까지 도맡았고, ‘법보신문’에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연재로 이어졌다. 법어집은 물론 ‘선린고경총서’, 논문, 언론기사, 역사를 섭렵했다. 불필, 천제, 원택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을 만나 시대별로 생애를 정리하는 노력 끝에 2015년 1월부터 매주 75회 연재했다. 매회 1만회 가량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추가 취재와 퇴고, 감수 등 5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성철 평전’(모과나무, 2017)으로 펴냈다.

    “성철 스님은 생식하고 옷 두 벌로 가난하게 평생을 사신 어른입니다. 지구라는 별에 와서 삶의 자국을 가장 적게 남긴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 법향이 가장 많이 퍼져나간  분이지요. 엄혹한 시대에 선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빛과 소금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권정생 선생, 성철 스님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자 가장 작지만 넓게 빛을 비추는 ‘강아지똥별’이었고 시대의 죽비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권정생 선생, 성철 스님이 모두 튀어나왔다.

    “행운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험한 모습을 띠면서 으르릉 거리며 오기도 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모든 아름다움에는 슬픔이 깃들어있습니다.”(권정생)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성철 스님)

    작가 김택근은 아쉽다. 누군가의 청으로 훌륭한 삶을 썼지만 아직 자신의 바람을 글로 풀어내지 못했다. 한 가지 숙원이 있다. ‘꽃’을 주제로 인간의 탐심 꾸짖는 장편 하나 남기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와 허세, 그 안에서 발버둥치는 우리네 탐심을 버려야 한다는 경책에 애정과 따뜻함을 담고 싶다. 불교 글을 쓰면서 ‘화엄경’ ‘금강경’을 애독하며 깊어진 이해가 있어 가능하다고 했다.

    빼앗긴 들에 봄은 오지 않는다. 작가 김택근, 그가 언젠가 피워낼 ‘꽃’은 탐심에 물든 들판을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꽃’은 그곳에 다시 찾아온 봄이기 때문이다. 물거품 같은 탐심 버려진 무인도 저 너머 수평선에 기어코 솟아오를 생명과 평화의 여명이라 믿는다.

    요즘 그가 집필실 노트북 옆에 두고두고 고치는 시 한편 있다. 대중 화장실 소변기에 놓인 얼음에서 북극곰의 눈물을 떠올렸고 이제 닦아주려 한다. 그가 숙원처럼 쓰려는 글이 엿보인다.

    겨울 끝자락, 어지러운 탐심 가득한 엄혹한 시대에 부는 칼바람이 매섭다. 꽃 피울 따듯한 봄볕이 문득 그립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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