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불교의 지혜와 AI, 동국의 다음 100년
  • 최고관리자 | 2025.11.13 17:56 | 조회 489
    동국대학교 개교 120주년을 앞두고
    불교의 지혜와 AI, 동국의 다음 100년


    ▲안영찬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2026년이면 동국대학교는 개교 120주년을 맞는다. 120년은 연륜의 숫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 속 동국의 역할을 다시 묻는 시간이다. 일제강점기, 전쟁과 가난, 산업화와 민주화, 압축성장을 지나면서 동국은 한 가지 가치를 놓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다.”
    이제 우리 앞의 질문은 분명하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간을 중심에 둘 것인가.
    AI는 이미 우리의 일과 학습, 행정, 채용, 심지어 관계 형성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편의는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남겼다. AI가 효율을 높일수록 사람의 가치는 높아지는가, 아니면 사람은 더 쉽게 교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동국은 침묵할 수 없다. 동국대학교는 불교의 정신을 뿌리로 세워진 학교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핵심은 추상적 교리가 아니다.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이다. 타인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자비(慈悲),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연기(緣起),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修行). 이것은 동국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AI 시대에 ‘자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I는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비는 “사람을 대체해도 되나?”만을 묻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사람을 함부로 소모해도 되는가?”를 묻는다. 자비는 동정이 아니라 약속이다. 성과를 이유로 사람의 존엄을 깎아내리지 않겠다는 약속, 조직의 언어로 바꾸면 이런 것이다. 직원과 시민을 단순 비용 항목으로만 보지 않는 경영. 실수한 개인만 탓하지 않고, 제도와 구조의 한계를 함께 살피는 경영. 동국은 앞으로 한국 사회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AI로 효율을 높이되, 사람의 가치를 절대값으로 둬라.” 이것이 자비의 현대적 해석이다.

    연기(緣起)는 또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고립돼 있지 않다. 기술 도입의 편의성은 해고의 속도와 연결되고, 해고의 속도는 가계의 불안정과 연결되며, 그것은 다시 지역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불교는 오래전부터 이 구조를 “모든 것은 서로 조건지어진다”고 설명했다. 바로 연기다.
    AI를 조직과 행정에 도입하는 순간, 우리는 자동화로 절감되는 비용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이 직원, 협력사, 지역 공동체 전체에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 이상주의가 아니다. 앞으로의 리더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관계망 전체를 책임 있게 바라보는 능력. 한국 사회는 이런 리더를 필요로 하고, 동국은 그런 리더를 길러낼 수 있는 학교다.

    중도(中道)는 균형의 문제다.

    중도는 ‘양쪽의 적당한 절충’이 아니다. 그것은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성숙한 균형이다. 기술만능주의에 취해 사람을 비용 절감 요소로만 바라보는 것도, 반대로 “기계가 인간을 망친다”는 말만 하며 성장을 멈추는 것도 중도가 아니다. 진짜 중도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기술을 쓰는가? 그 목적은 인간의 존엄과 양립 가능한가?”
    이 질문을 조직과 행정, 교실과 회의실에서 끊임없이 묻도록 하는 힘, 이것이 동국이 가진 정신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수행(修行).

    수행은 절이나 선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수행은 메타인지, 즉 자기 성찰 능력이다. 나는 무엇을 안다고 믿는가? 나는 어떤 편견으로 결정을 내렸는가? 지금의 선택은 누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AI는 판단을 빨리 도와준다. 그러나 “판단을 맡기는 습관”은 곧 “생각을 멈추는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쉽게 조종된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인간의 자기 점검 능력은 더 강해져야 한다. 앞으로의 사회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지식 많은 사람’이 아니라 ‘판단이 깊은 사람’이다. 수행은 그 깊이를 기르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동국대학교의 사명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AI를 잘 다루는 기술형 인재만을 길러야 하는가?
    아니면 AI 시대를 안전하고 인간답게, 지속가능하게 만들 책임 있는 시민·경영자·공직자·연구자를 길러야 하는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교육 철학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스킬의 학교’를 의미한다. 후자는 ‘양심의 학교’를 의미한다. 동국은 이제, 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의 종합대학이다.
    따라서 개교 120주년은 단순한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약속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동국의 다음 100년은 “불교적 인간존중을 AI 시대의 언어로 번역해 사회에 제시하는 100년”이 되어야 한다. 그 약속을 빈말로 두지 않기 위해, 나는 세 가지 행동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동국대식 AI 윤리’의 생활화를 시작하자.

    우리는 학생과 구성원들에게 AI 활용 능력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까지 함께 가르쳐야 한다. 채용에서 AI를 쓸 때, 회의록을 요약할 때, 행정 의사결정을 준비할 때, 어디까지가 허용이고 어디부터는 금지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 기준은 추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생활 규범이어야 한다. 핵심은 단 하나다. 사람은 수단이 아니다.
    이 원칙을 각 동문 조직의 인사, 평가, 보고 문화에 실제 조항으로 넣어주길 요청한다.

    둘째, ‘디지털 연기(緣起)’ 관점을 경영과 행정의 표준으로 삼자.

    AI 도입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비용 절감을 계산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자. 그 결정이 누구의 삶을 밀어내는가, 누구를 보호하는가, 어떤 새로운 위험과 어떤 새로운 기회를 동시에 만드는가를 함께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내 결정은 나만의 결정이 아니다”라는 감각을 의사결정 절차 속에 집어넣자는 것이다. 이것은 동국이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셋째, 한국 사회에 새로운 리더의 상(像)을 제안하자.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 근면과 성장을, 민주화 시대에 정의와 참여를 이야기했다. 이제 AI 시대에 동국은 존엄과 연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빠른 사람보다 깊은 사람. 많이 가진 사람보다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
    동국은 이 기준을 사회에 던질 수 있는 학교다. 사회가 방향을 잃었을 때 “이쪽이 사람 쪽입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양심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 역할을 학교만이 아니라 동문이 각자의 자리에서 수행해 주기를 요청한다.
    120년 전, 우리는 ‘배움은 곧 해방’이라고 믿었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AI 시대의 진짜 문해력은 도구를 빨리 다루는 손기술이 아니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힘이다.
    그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 그 마음으로 조직을 이끄는 사람. 그 마음으로 사회를 설계하는 사람.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동국대학교가 다음 100년에도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동문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요청드린다.

    AI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흐름의 방향을 누가 정할 것인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방향을 우리가 정하자.
    사람을 먼저 두는 것. 자비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 연기를 경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중도로 폭주를 막는 것. 수행으로 나 자신부터 단련하는 것.

    이 다섯 가지가 우리가 후배 세대에게 남겨야 할 유산이다.

    동국대학교의 120주년은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준을 약속하는 날이어야 한다. 동문 여러분, 이 약속을 함께 서명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AI의 효율을 받아들이되 인간의 존엄을 양보하지 않겠다.” 이것이 동국의 약속이고, 우리의 약속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