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서울대 등 연파하고 5전5승 퀴즈아카데미 우승
  • 최고관리자 | 2019.05.24 14:10 | 조회 2121


    동대신문 윤청광 오익환 이창식
    기자 3인조 대학가흔들다

     

    동국가족 격려·환호 라면 1봉지 10원때 상금 1만원 받아


    이 창 식(사학62)

    MBC-TV PD 개국멤버, 편성부 차장, 제작부장 예능국장, MBC예술단 상무이사 총감독 역임. 현 애니제작고문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이건 팩트요 기록이요 레알이다.

    서울시내 유명대 등을 물리치고 44승한 중앙대를 꺽은 강팀 서울대 상대를 한판으로 누르고 서울대 의대의 기권을 불렀으며 서울대 문리대를 마지막 5전 때 역전승으로 깨고 KBS-TV 대학생 퀴즈프로 퀴즈 아카데미55승의 우승!

    56년 전 1963년 여름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쿵쿵 뛴다.

     

    동대신문사 문을 왈칵 열고 들어온 최재구 학생과장(후에 국회의원, 총동창회장)이 부리부리한 눈길로 우릴 훓터보더니 느그들 갖고 서울대 상대 되것나!”염장을 지른다. 맘의 불을 당긴 우리들은 한번 붙어 봅시다. 이래서 윤청광(4.현 한국출판협회이사장) 오익환(2.경향신문 논설위원 역임 ) 이창식(2) 3인의 동대신문사 학생기자로 동국대학교 팀을 급조 결성해 1주일 후 KBS-TV스튜디오로 비장한 각오로 달려갔다. 학교이름을 팀명으로 한 당시 인기프로 퀴즈 아카데미의 우리 동국대학교 팀의 센세이션날한 파죽의 연전연승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퀴즈란게 꼭 실력을 100% 비례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에 백과사전식의 지식이 내장되어 순발력 있게 남보다 빠르게 정확하게 발표해야 되는 것으로 평소에 내공을 쌓아놔야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TV는 종각 옆에 있던 RCA-TV가 불타고 1961년에야 KBS-TV남산입구에서 개국했다. 흑백TV로 보통가정엔 드물었었고, 이웃들이 TV가 있는 집으로 가서 애국가 끝나고 브라운관이 백판 될 때까지 폐를 끼치곤 하였다.

     

    우리 집 응원단은 을지로6가 계림극장 옆의 계림다방에서 박수치고 소릴 질렀다.

    이기고 나니 학교 측에서 우릴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특히 많은 동문들의 격려 전화가 쇄도 하였다. 체육관계와는 결이 다른 별다른 응원이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 프로에서 614일 서울대 상과팀을 75로 이겨 서전을 장식한데 이어 2차전에서 덕성여대를 90, 3차전 한양대를 7:2로 셧아웃시키고, 4차전에서 성균관대를 6:1로 완승하니 상대가 없어 프로가 결방되어버렸다. 그 뒤로 서울의대까지 섭외되었다가 기권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우리가 무서워 다 상대를 안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동국대학교의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는듯 했다. 그런데 한 주 쉬고 드디어 상대팀이 결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서울대 문리대팀이라고 한다. 정말 강적이 나타났다. 홍두표 PD(후에 TBC동양방송,KBS사장역임)의 사전 주의사항에 이어 호남아 인상의 김영호 아나운서를 조명이 눈부신 스튜디오에서 만난다. 다섯 번째지만 왜 이리 떨렸는지 모른다. 진행은 막상막하! 130초 남았다는 흥분된 아나멘트 때 상식박사인 오익환도 분전했는데 전광판엔 7:8로 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학문제가 출제되고 그 분야의 전문가인 윤청광 선배가 맟춰 버렸다. 스튜디오 안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카메라 옆에선 스폰서가 끊으라는 시늉으로 큐시트를 목에 대고 난리다. PD의 지시가 왔는지 김영호 아나가 시간은 지났지만 마지막 한 문제로 결판을 내겠단다.

     

    팽팽한 긴장 속에 마지막 문제가 출제되고 있는데 조기에 상대편 서울대 문리대의 벨이 울린다. “아이쿠 졌구나했는데 디스레일리” - 김 아나운서의 틀렸습니다 소리에 전광석화처럼 반사적으로 내 뇌리에 떠오르는 글래드스톤” - 부자를 누르고 힘차게 외쳤다.

     

    ! 정답입니다야구중계 역전만루 홈런을 외치는 소리보다 더 컸던 아나운서의 감격스런 소리를 상기하면 지금도 심쿵해진다. 꼭 한일전 축구실황의 우리 편 아나운서 같았다.

    그 다음 주 그 시간에 전례 없는 좌담회, 시상식, 축하음악회가 방송된다. 또 서울대 음대 실내악단이 출연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지면관계로 상세하게 못썼지만 동대신문사 전화통이 불이 나도록 격려, 환호 전화는 물론 동국대 동문 선배님들의 눈물 나도록 고마운 에피소드도 잊을 수 없다. 목요일 저녁 방송국에 갔을 때마다 당시 KBS PD 김재형 선배(후에 용의 눈물등 사극전문 연출)는 카메라 뒤에서 후배들 기를 살려주었다. 55승후 을지로4가에 있는 당시 유명 불고기 냉면 집 서래관에서 축승파티를 하는데 동국대 나온게 감격스럽다며 실컷 먹으라며 불고기 등을 무상으로 무한 리필해주신 이름 모를 선배님께 새삼 감사드린다.

     

    담당 홍두표 PD는 서울대 문리대 출신으로 비교적 공정하게 진행했다. 우승 상패는 학교에 드리고, 우승 장학금으로 1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출시된 삼양라면 한 봉지 값이 10원이었으니 꽤 많은 상금이다. 스폰서는 건일약품으로 초창기라 상금 지출에 신경 쓴게 아니었나 싶다. 처음 나가는 현찰 상금이었으니까. 당시 TV방송 초창기라 아직 넉넉지 못한 한국 경제 사정으론 파격적이고 센세이션날한 방송 상금 역사다.

     

    후에 내가 MBCTV 제작부장으로 동명의 퀴즈 아카데미CP로서 기획하고 주철환 피디를 통해 인기 성공프로로 자리매김한 것의 동기는 물론 동국대 학생때의 이런 살아있는 기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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