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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계홍 동문, 대하 역사소설 ‘깃발’ 전 5권 펴내
  • 최고관리자 | 2021.02.25 15:36 | 조회 3102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까지 나라를 지킨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장군 이야기 



    이계홍(국문65, 소설가, 서울신문 편집국장 직무대행) 본 총동창회 회보 편집위원장이 2월초 대하 역사소설 <깃발> 5권을 펴냈다종합출판 범우사  발행.

     

    <깃발>은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과 같이 충무공 시호를 받은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장 불행한 시기에 오직 군인 외길을 걸어온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정충신 장군은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만 16세에 무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뒤 전 생애 60년 중 44년을 군문에 있었다. 그가 활약하던 시기는 선조-광해군-인조 대였으며, 그는 여타의 장수와 달리 시대모순을 헤쳐나간 개혁파로서의 일생을 살았다.

     

    정충신은 임진왜란 3대 육전(陸戰) 중 하나인 이치·웅치대첩(충남 금산·전북 완주·무주·진안·장수)에서 소년 척후병으로 활동하며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이 전투 승리로 전라도가 왜군에 점령되지 않고, 아군 병력 충원은 물론 후방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친 중심이 됐다.

     

    전라도 광주 출신인 소년 병사 정충신은 이치·웅치전 승전을 기록한 권율 장군의 장계를 품에 안고 단 25일 만에 의주로 달려가 압록강변에서 명나라로 도망갈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선조에게 전달했다. 만약 권율 장군의 장계가 도달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압록강을 건넜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영영 지도상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이계홍 작가는 광주광역시의 주 도로이자 5.18 민주화항쟁의 본거지인 금남로가 정충신의 업적을 기려 내린 작호(爵號:왕이 공을 세운 당대의 훈신에게 내린 훈작)금남군에서 유래된 점에 유의하면서 광주 정신과 일치된 정충신 장군의 개혁 장군으로서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계홍 작가는 35년의 언론사 근무를 마치고 10년 전부터 문필활동을 펴오면서 주로 우리 역사의 중요 마디를 추적해오다 이같이 <깃발>이라는 대작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계홍 작가는 언론계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문학을 중단했는데, 퇴직과 함께 우리 역사의 내면, 그중에서도 역사의 수난기를 살피기 시작했다그 수난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정묘호란-병자호란 시기와 구한말의 망국 시기, 그리고 해방 공간의 혼란기 등 크게 세 시기로 본다고 정의했다.

     

    이중 임진왜란 시기를 골라 작가적 상상력과 기자적 현장성으로 앵글을 들이대 당시의 직업군인인 정충신을 통해 시대의 모순과 사회상, 그중 눈뜨지 못한 사대부의 실상을 밀도 있게 그렸다.

     

    이계홍 작가는 이때 우리가 좀 더 역사의식에 투철하고, 갈등과 분열과 대립상을 성찰하는 가운데 창조적으로 미래 세계를 설계했더라면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향기로운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런 성찰 대신 갈등과 대립이 격화됨으로써 구한말의 망국과 8.15해방의 분열과 분단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계홍 작가는 이에따라 묻힌 역사적 인물을 호출해 그들의 행로를 더듬어 재생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바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중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장군은 이 소재에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소개했다.

     

    역사소설 <깃발>은 소년 병사 정충신이 25백 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의주로 피난 간 선조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장계는 임진왜란 때 이치·웅치전투에서 승리로 이끈 광주 목사이자 전라도체찰사인 권율이 쓴 승전 기록이었다. 장계는 권율 장군이 임진왜란 3대 육전(陸戰) 중 하나인 이치·웅치전투에서 왜적을 무찔러 곡창지대 호남을 지켰으니 상감마마는 도망가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뒤이어 정유재란(1597)인조반정(1623)이괄의 난(1624)안현전투(1924)-쌍령전투(1924)-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6) 직전까지 한평생 무장으로서 피 흘린 전선의 복판에 있었던 이야기가 그려진다.

     

    널리 알려진 장수의 일대기가 아니라 역사상 묻혀있는 장수를 발굴해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특징이다.

     

    정충신의 군인 일생 중 그가 거친 직책만도 16세에 무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뒤 군기시정(軍器寺正)선사포 첨사조산보 만호보을하진 첨사포이 만호창주 첨사만포진 첨사안주목사 겸 방어사평안도 병마좌우후이괄의 난 전부대장(前部大將)영변대도호부사팔도부원수주사원수(舟師元帥)오위도총부도총관포도대장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 20여개나 된다.

     

    당시의 주요 전투에는 그가 모두 참전했다. 이같은 공로로 그의 사후 49년만인 숙종대에 충무공시호가 내려졌다. 44년 직업군인 외길의 경력으로서 충무공 시호를 받은 인물은 정충신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세에 뚜렷하게 호출되지 못했다.

     

    이는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조 사회에서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의 활약상이 묻힌 측면이 있다. 주류 권력층에게 비주류로서 견제를 받은 점과 서민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저평가됐다.

    거기에 군사 외교적 역할이 당시의 정치풍토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라는 점도 작용했다고 이 작가는 분석한다.

     

    정충신은 친명배청(親明背淸)을 주장하는 주류 정치계의 척화론(청나라 배격)이 아니라 주화론(청나라와의 화친)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장만·최명길과 함께 걸어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같은 소외는 이후 조선가 망하기까지 260년 동안 관통해왔다. 그리고 그가 북방 변경 최일선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치무대에 자주 등장하지 못한 것이 역사에 크게 호명되지 못한 요인이 됐다.

     

    정충신 장군은 최전방의 무관이면서도 사서삼경과 천 리에 능한 지식인이었으며, 외교와 첩보전에 밝아 광해군 시기, ·청 양대 세력의 동향을 살피며 중립노선을 걷자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현실적인 국제적 감각으로 중립외교와 개혁 담론으로 나라를 새롭게 구성하자는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도전하는 후금국에 전하고자 사신이 들고 온 선전포고문을 북방 변경 근무지에서 빼앗아 불살라버린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

     

    정충신 장군이 활동하던 시기, 중앙 정치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묻혀 정파끼리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선조·광해·인조 대, 명나라에 대한 충성 경쟁과 함께 동인 대 서인, 훈구 대 사림, 북인 대 남인, 대북 대 소북의 정치투쟁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원리주의, 공리공담에 빠져 나라가 허우적거렸다.

     

    이때 그는 오랑캐(여진후금청나라)의 흥기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양 파벌로부터 동시에 배척받았다.

     

    사대부의 좁은 세계관과 작은 것에 목숨 걸고 싸우는 진창 속에서도 개혁 담론을 펼치다 좌절되곤 했으나 그럴수록 굽힘없이 변화를 추동하는 중심에 섰다. 그의 무공이 평가를 받아 충무공시호가 내려진 것은 그의 사후 49년만인 숙종 대의 일이다.

     

    이계홍 작가는 이 작품 이외에도 <월간문학>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해방 공간에서 활동한 박정희·오일균·조병건·장지량 등 일본 육사 출신들이 좌우익 대결에서 좌절해가는 과정을 그린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36회에 걸쳐 연재했다.

     

    한편 이계홍 작가의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현대문학 전공).

     

    -동아일보 문화부 체육부 기자 및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문화일보 문화부장 체육부장 특집부장 사회2부장, 서울신문 논설위원 수석편집부 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국장급). 서울여자대학교 강사, 용인대학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국책연구기관) 연구기획팀 전문위원 역임. 현재 세종포스트 주필 근무 중.

     

    -1974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으로 문단 데뷔.

     

    작품집

    틈만 나면 자살하는 남자(책나라), 중편소설집 비켜 앉은 남자(신원문화사), 소설집 밑천(문학아카데미), 장편소설 초록빛 파도(아사달의 꽃) 늦은 저녁(조선문학), 소설집 서울 노마드(문학나무) .

    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월간문학 34회 연재),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이야기(남도일보 650회 연재).

     

    인물전기 및 휴먼스토리

    이계홍의 휴먼스토리(모아드림·월간 신동아연재 이 사람의 삶인터뷰집), 인물전기 장군이 된 이등병 최갑석장군 이야기(화남출판사),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 켜고-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이야기(이미지북),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전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 이야기(국방일보 연재)



    저자 이계홍 동문 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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